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앤 불린 (문단 편집) === 파경, 그리고 사형선고 === 두 사람이 파경을 맞이한 가장 큰 이유는 앤이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해 헨리 8세의 애정을 잃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태까지 앤의 논란 많은 행보와 불운이 여러가지로 겹치면서 그녀의 파멸에 불을 당겼다. *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왕자를 낳지 못하고 [[엘리자베스 1세]] 이후로 아이를 연달아 유산하거나 사산했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바는 없고 여러 가지 설만 있다. * 일단 앤의 [[혈액형]]이 RH- 형이라 첫째인 엘리자베스는 항체가 형성되지 않아서 무사히 낳을 수 있었지만 [[신생아 용혈성 질환|둘째부터는 항체가 형성되어]] 태아의 [[적혈구]]가 파괴되는 바람에 조기에 유산했다는 학설이 있다.[* 이를 '''[[신생아 용혈성 질환]]'''이라고 한다. 현재는 이러할 경우 첫째 자녀를 낳을 무렵 산모에게 Anti-D 항체를 주입하여 해결한다.] 앤의 유해를 연구한 결과도 이 학설을 뒷받침해 준다고는 하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다. [[헨리 8세]]의 모든 왕비들은 물론 정부들도 [[임신]]과 [[출산]]에 문제가 있었고, 태어난 자식들 중 메리와 엘리자베스를 제외한 상당수도 요절한 것을 생각해 보면 [[헨리 8세]]에게 [[매독]]이 있었거나 그밖에 여러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첫 왕비 [[아라곤의 카탈리나]] 역시 아들을 비롯하여 많은 아이들을 낳았으나 [[메리 1세]]를 제외한 모두가 일찍 죽었다. 당시 영아, 유아 사망률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라지만, 그렇게나 많이 낳았는데도 하나같이 일찍 죽은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기는 하다. 세 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가 낳은 유일한 적자 [[에드워드 6세]]가 요절한 것도 헨리 8세의 난잡한 성생활 때문에 발병한 선천성 [[매독]] 때문이라는 설이 있기도 하다. [[에드워드 6세]]를 낳기 전에는 엘리자베스 블런트라는 정부와의 사이에서 사생아 헨리 피츠로이를 낳았는데 헨리 피츠로이 역시 1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러나 헨리 8세의 자세한 의료 기록에 당시 매독의 특효법으로 여겨졌던 [[수은]] 치료를 한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전혀 언급이 없다. * 앤 불린의 몰락에 결정적인 이유였던 아들을 못 낳은 것은 현대에는 남자에게서 유전되는 Y염색체 때문임을 사람들이 알지만, 중세 사회에서는 태아의 성별 등 [[임신]]과 [[출산]]의 모든 부분이 여자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계속 유산과 사산을 반복하는 것은 전적으로 여자의 탓으로 여겨졌다. 물론 과학적으로도 여자 몸속에서 Y염색체의 생존율을 결정짓는 것은 여자의 내부가 산성과 알칼리성이냐에 따라 갈린다. [* 여담이지만 필리파 그레고리가 집필한 《[[천일의 스캔들]]》 원작소설에서는, 앤이 가장 마지막에 사산한 아이가 기형아로 태어난 것이 앤이 [[마녀]]로 몰리는 데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고 한다. <[[튜더스]]>에서도 [[헨리 8세]]가 "사산한 아이는 기형아였으니 내 아이일 리 없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앤이 기형아를 낳았다는 설은, 후대에 신교도와 앤의 딸인 엘리자베스 여왕을 싫어했던 반대파가 쓴 프로파간다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정말로 기형아를 낳았더라면 당시 궁정 기록이나 앤의 재판 기록에 전혀 언급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필리파 그레고리는 "나는 사학 전공이었으므로 역사를 정확하게 서술한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면에서 부정확하고 재미를 위해 악의 넘치는 소문을 그대로 갖다 쓰는 등 악명이 높다.] 또한 감염에 대한 인식이 없어 아이를 받는 산파가 손을 씻지 않을 정도로 열악했던 당대의 위생 관념이나 무엇보다도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만 한다"는 스트레스가 유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 심지어 현대에 이르렀음에도 황태자비 시절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전 국가적인 압박과 통제로 인한 스트레스로 여러 번 유산을 거듭했던 일본의 [[마사코 황후]]의 경우만 보아도 당시의 압박은 차원이 달랐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 당대 기록에 의하면 앤과의 사이가 시들해질 결혼 중반 무렵에 헨리 8세는 앤의 시녀로 있던 조용한 여인 [[제인 시모어]]에게 빠져 있었다. 하루는 제인을 무릎 위에 앉히고 시시덕거리는 장면을 당시 [[임신]] 중이었던 앤이 보고는 충격을 받았고, 결국 남자아이를 유산하고 말았다. 그 소식을 접한 왕은 "하늘은 우리에게 아들을 주지 않으려는가 보오." 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 [[헨리 8세]]는 첫 왕비 [[아라곤의 카탈리나]]와 이혼하는 과정에서 캐서린이 오랜 법정 투쟁을 벌였기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망신을 거하게 당하면서 체통을 크게 잃었다.[* [[젠트리]]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아무리 절대 왕정의 군주라지만 손쉽게 조강지처를 내치고 그에 반대하는 [[교황청]]과 관계를 끊고 수장령을 선포하는 것은 어려웠다. 젠트리들도 [[헨리 8세]]와 마찬가지로 [[메리 1세|메리 공주]]가 당시 풍속에 따라 외국 왕족과 결혼하면 하나 남은 계승권이 외국 왕가로 넘어가는 것을 반대했기에 왕의 이혼을 지지한 것이다.] 앤의 전임자였던 캐서린 왕비는 왕자를 낳지 못했다는 큰 흠만 빼고는 집안이 대단함에도 영국 이익에 반해 크게 정치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딸만 낳아 구박받았어도 동정표가 많았다. 또한 "덕이 높은 [[조강지처]]를 여우 같은 젊은 여자가 내쫓는다"는 구도는 앤이 악녀라는 평판을 얻기에 충분했다. 또한 절대 군주인 헨리 8세에게 직접 욕을 할 수 없으니 모든 비난의 화살은 앤을 향했다. 이러한 비난은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캐서린의 친정인 [[압스부르고 왕조|스페인]]에서는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고, [[프랑스 왕국|프랑스]]에서조차 캐서린이 죽기 전까지 앤을 정식 왕비로 인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앤이 헨리 8세의 연인이었던 시절, "앤 불린이 왕비가 되고자 캐서린 왕비를 몰아내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분노한 백성들이 앤을 습격하려 했다는 비화가 있을 정도다. 여담이지만 후에 사람들은 앤을 '여섯 손가락의 [[마녀]]'[* 앤의 손에 손가락처럼 보이는 혹이 하나 있었다는 설도 있으나, 진위는 알 수 없다. 외모는 사람의 선악을 나타내며 기형이 악의 상징이라고 여겨지던 시대에, 그렇게 눈에 띄는 흠이 있었다면 왕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데 물론 이는 후대의 전설이다. * 또한 앤은 신교도는 아니었으나 정치적, 개인적인 이유로 [[종교개혁]]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캐서린이 [[가톨릭]] 세력의 지지를 받던 상황인 만큼 개혁신학 성향의 [[젠트리]]들을 조용히 지지하면서 보수적인 세력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앤이 사실상 잉글랜드와 [[교황청]]의 관계 단절의 동기 역할을 했으니 종교 갈등기에 적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앤과 불린 가문의 몰락을 바라던 정적들이 많은 상태에서 [[헨리 8세]]의 총애를 잃은 앤은 결혼 조건인 '왕자 출산'에 끝내 실패하면서 몰락해야 했다. * 게다가 앤은 캐서린 왕비의 딸인 [[메리 1세]]와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앤은 메리에게 "나를 너의 새어머니로서, 잉글랜드의 왕비로서 인정해 달라"면서 화해의 손길을 몇 번 보냈지만, 친모 캐서린을 끝까지 편들었던 메리는 앤을 인정하길 거부하고 "나는 우리 어머니 외의 잉글랜드 왕비는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에 불같은 성격의 앤은 메리를 친딸 [[엘리자베스 1세]]의 [[시녀]]로 삼아 기저귀를 가는 등의 일을 직접 하게 시켰고 "시종과 결혼시켜 버리겠다!" 등의 악담을 하기도 했다.[* 일단 [[유럽]]에서 [[시녀]]나 시종은 하녀, 하인과는 달라서 기본적으로 지체 높은 귀족들이 맡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누군가를 모시는 일이라 상대보다 신분이 낮다는 건 확실했다. 메리를 엘리자베스의 시녀로 삼고 시종과 결혼시키겠다고 한 건 "엘리자베스는 적출 [[공주]]고 메리는 일개 사생아니까 엘리자베스보다 비천한 존재"라고 모욕하는 일이었다.][* 애시당초 적출 공주라면 기본적으로 타국의 왕에게 시집가서 왕비가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으므로 시종과 결혼시킨다는 것은 메리의 적녀 자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며 현재보다 미천한 신분으로 떨어뜨리겠다는 말, 나아가 메리의 어머니 캐서린 왕비의 정통성도 없애버리겠다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메리는 자기 어머니를 쫓아내는 걸로도 모자라 끊임없이 자신의 격하된 신분을 일깨우고 자극하는 앤과 당연히 원수가 되었고, 상전으로 모시게 된 이복 여동생 엘리자베스에게도 앤의 딸이라는 이유로 좋은 감정을 갖지 못했다. 앤은 메리를 굴복시키기 위해 온갖 나쁜 계모 짓은 다 해서 메리는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데다 앤의 구박과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에 큰 상해를 입었다. 다만 앤의 사후에 메리는 끊임없이 엘리자베스를 경계하면서도 자매의 정을 주는 일종의 애증을 보인다.[* [[미드]] <[[튜더스]]>에서는 이를 반영해, 메리는 이복동생인 엘리자베스의 시녀가 되는 굴욕을 겪으면서도 엘리자베스가 혼자 울고 있을 때 직접 안아 달래 주는 등 잘 돌봐 주었고, 나중에 엘리자베스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도 잘 지내는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수의 딸이지만 어린 엘리자베스까지 미워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나, 태어났을 때부터 기른 정 때문인 듯하다. 실제로 [[메리 1세]]는 즉위 후 엘리자베스가 역모를 꾸몄다는 누명을 쓰고 체포되자 처형할 수 있었는데도 살려주기도 했다. 물론 엘리자베스가 진짜 역모를 꾸민 게 아닌 데다 당시 튜더 왕가에 남은 직계 왕족이 얼마 없어서 내린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메리가 엘리자베스를 극렬히 증오했다는 증거도 없다. 엘리자베스에게서 앤 불린의 모습이 보이거나 신교도 성향이 거슬려 경계했어도 메리는 엘리자베스를 끝내 제거하지 못했다.[* 실제로 [[메리 1세]]는 당시의 군주치고는 관대하고 정이 많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그렇다 쳐도 [[제인 그레이]]도 살려주려고 했었다. 제인 그레이는 메리의 고모의 외손녀(즉, 5촌 조카)로 막장 부모에게 학대당하며 자라다가, [[에드워드 6세]] 사후 권력을 탐한 부모의 강요로 여왕으로 옹립됐다. 이후 메리가 즉위하자 제인은 순순히 폐위에 동의했지만 그녀의 부모가 계속 반역에 가담하는 바람에 위험인물로 찍혔고 이런 상황에서도 메리는 제인을 어떻게든 살려주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 거기다 자기 편인 사람들과도 갈등이 생겨 다투다가 결국에는 척을 지게 되었다. 자신을 지원해 주었던 [[토머스 크롬웰]]과 사이가 벌어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크롬웰은 당시 왕이 제일 믿는 심복이었고, 외가 하워드 가문의 수장인 외삼촌 노퍽 공작 [[토머스 하워드]]와도 싸우다가 결국 사이가 틀어졌다.[* 조카 앤 불린을 통해 세력을 강화했던 토머스 하워드는 사태가 나빠지자 앤을 버리고 잽싸게 발을 뺐고, 다른 조카인 [[캐서린 하워드]]를 또다시 왕비로 만든 후에도 똑같이 그녀도 외면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헨리 8세는 또 "하느님이 나와 앤의 결혼을 반기지 않는다" 여기고 앤의 시녀였던 순종적이고 조용한 [[제인 시모어]]를 왕비로 세울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 앤과의 결혼을 무효화하려 한다. 앤은 그녀의 적들마저 놀랄 만큼 신속하게 몰락했다. 이미 다혈질적인 성격, 투기, 잇따른 사산으로 진작에 왕의 사랑을 잃었고, 외가와 친정도 그녀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앤의 젊은 시녀인 [[제인 시모어]]를 차기 왕비감으로 점찍은 [[헨리 8세]]는 앤을 [[런던 탑]]에 가두고, 그녀가 6명의 남자와 [[간통]]을 저지르고 특히 남동생[* 불린 가문의 3남매의 나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다. 게다가 [[영어]]로는 나이 상관없이 형제자매를 sister, brother라고 부르기 때문에, 누가 나이가 많은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메리 불린]]-앤 불린-[[조지 불린]]의 순서였다고 받아들이고 있다.]인 [[조지 불린]]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누명을 씌운 뒤[* 영화 <[[천일의 스캔들]]>에서는 사산하는 바람에 극도의 절박감을 느낀 앤이 남동생 [[조지 불린]]을 침실로 끌어들이기까지는 하지만 둘 다 죄책감을 느껴 실행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앤을 감시하기 위해 몰래 따라다니던 [[시녀]] 제인 파커가 이를 목격한다. 제인은 조지 불린의 아내, 즉 앤 불린의 올케이다. 제인은 남편 조지에게 인격적으로 무시와 모욕을 당해 왔기 때문에 조지를 증오했다. 제인은 손위 시누이와 남편이 함께 침실로 들어가는 것까지만 목격하고는 그것을 [[헨리 8세]]에게 밀고하였고, 앤은 다음날 사산 사실을 고백하러 헨리 8세에게 가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사형 선고를 내렸다. [[헨리 8세]]는 과거 앤에게 주었던 불같은 사랑을 이제 와서 "[[마녀]]의 마법"이라며 애써 부정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 했던 것처럼 이혼이 아닌 혼인무효화를 단행하면서 앤과의 결혼 자체를 부정했고, 당시 고작 3세였던 엘리자베스마저 아버지에 의해 어머니가 처형당하면서 [[사생아]]로 전락하여 계승권도 잃게 된다. 여담이지만 당연히 호칭도 "엘리자베스 [[공주]]"(Princess Elizabeth)에서 "엘리자베스 아가씨"(Lady Elizabeth)[* 참고로 lady는 백작 이상의 귀족의 부인이나 딸에게 붙이는 호칭이다. 왕족에서 귀족 신분으로 떨어진 것.]로 바뀌었다. 영특했던 엘리자베스가 이런 사실을 바로 알고 "왜 이제는 나를 공주라고 부르지 않느냐?"고 물었다는 비화도 있다. 물론 나중에 [[헨리 8세]]의 분노가 풀리면서 계승권은 회복했다. 결국 앤은 36세의 나이로 [[런던 탑]] 내부 처형 집행장에서 [[참수형]]을 당해 세상을 떠났다. 헨리 8세는 처음에 앤을 [[마녀]]로 몰아 [[화형]]시키려 했으나 앤에게 동정심을 지녔던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크랜머]]의 호소와 처형 직전에 그래도 한때 사랑한 여자에 대한 마지막 배려를 하고 싶었던 일말의 양심으로 인해 빨리 죽을 수 있도록 참수형으로 처형 방식을 바꾸었다. 그리고 특별히 최고로 유능한 참수형 [[망나니|집행자]]를 [[프랑스]] 칼레[* 이 당시 [[칼레]]는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대륙에 마지막으로 남은 [[잉글랜드 왕국|잉글랜드]] 영토였다. 나중에 [[메리 1세]] 때 [[프랑스 왕국|프랑스]]와 전쟁을 하다가 빼앗긴다.]에서 불러 출장을 오게 했다. 원래 참수형은 [[도끼]]로 집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날이 무딘 편인 도끼로 목을 자르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내려쳐야 하기 때문에 곱게 죽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도끼로 참수당한 [[토머스 크롬웰]], [[메리 1세(스코틀랜드)|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는 한 번에 목이 잘리지 않아서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아야 했다. 여담이지만 크롬웰의 경우는 [[헨리 8세]]가 보복 차원에서 일부러 서투른 [[망나니|집행인]]을 썼다는 비화가 있다.] 하지만 칼레의 집행인은 검으로 한번에 깨끗하게 목을 벨 수 있었으니 그나마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아무리 사형당할 사람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다 해도 동서양 막론하고 "죽더라도 곱게 죽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던 듯 하다. 사형수의 가족들은 사형을 맡은 망나니에게 고통없이 빨리 보내달라는 뜻에서 돈을 건네주기도 했고, [[단두대]] 역시 목을 한 번에 쳐서 죽이려는 뜻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프랑스에서 처형 장면을 목격한 국왕 [[루이 16세]]가 저건 너무 참혹하니까 방법을 바꿔 보라고 해서 개발된 게 기요틴.] [[런던 탑]]에서 앤은 처형 방식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웃으며 "내 목은 가늘어서 빨리 끝날 테니 다행입니다."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남기기도 했다고. 어쩌면 앤으로선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저 순간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결혼 전 무려 7년 동안 천하의 호색한 [[헨리 8세]]의 애정을 움켜쥐려고 끊임없이 마음 졸여야 했으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이고, 엘리자베스를 낳은 후 고작 2년 9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연달아 2~3번이나 5~6개월만에 유산하면서 육체적인 건강도 크게 상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가 [[왕비]]로 있던 시절에 그녀를 본 외국의 한 대사는 '늙고 추레한 여자'라고 혹평했다. 처형 당시 나이가 아직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밖에 안 되었으니 그 나이에 늙고 추레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면 건강상의 문제가 없었을 수가 없다. 앤은 처형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나는 정당한 이유로 처형을 당하는 것이며, 헨리 8세는 성군이니 그에게 충성을 다해 달라" 는 간단한 연설을 하고 >"[[예수]]님에게 내 영혼을 맡깁니다" 라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며 참수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이나 태도는 매우 의연했다고 한다. 집행인은 짚더미 밑에 칼을 감추어 놓았는데, 일부러 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손을 내밀며 >"칼을 건네줘!" 라고 외쳤고, 그 말을 들은 앤은 무의식적으로 목을 빼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집행인은 칼을 들어 앤의 목을 내리쳐 단번에 잘라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